정치의 기억 10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그의 삶과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미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의 한 청년이 온몸에 불을 붙이며 남긴 외침은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바꿔놓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전태일이었고, 그의 죽음은 열악한 노동 환경과 비인간적인 대우에 대한 경종이자 노동자의 인권을 향한 절규였습니다.1. 가난 속에서 시작된 삶전태일 열사는 1948년 8월 26일, 대구 남산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혼란한 시기에 가난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신문 배달, 구두닦이 등 어린 나이에 노동을 시작해야만 했습니다.전태일은 비록 가난했지만, 성실하고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은 컸지만,..

정치의 기억 2024.12.18

억울한 죽음, 불꽃이 된 기억: 박종철과 민주화의 길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이 한 문장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거짓말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후,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한 발언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사건의 발생과 은폐 시도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1월 14일에 발생했습니다. 당시 21세였던 박종철은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 관련 수배자인 선배 박종운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불법으로 연행되었습니다. 그는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다가 결국 사망했습니다. 사건 직후 경찰은 이를 은폐하려..

정치의 기억 2024.12.16

고문기술자 이근안: 국가 폭력의 어두운 그림자

“매우 야만적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1999년 고(故) 김근태 전 국민회의 부총재가 남긴 말입니다. 그는 1980년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한 경험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문의 중심에는 '고문기술자'로 불렸던 이근안이 있었습니다. 이근안은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박정희 유신 정권과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가와 간첩 혐의자들에게 가혹한 고문을 자행하며 악명을 떨쳤습니다. 그의 별명은 '인간백정', '지옥에서 온 장의사' 등으로 불렸으며, 이는 그가 얼마나 잔혹한 수단으로 사람들을 다뤘는지를 보여줍니다.이근안의 등장과 악명1938년 인천에서 태어난 이근안은 경찰 순경으로 시작해 대공수사 분야에서 빠르게 승진했습니다. 그는..

정치의 기억 2024.12.13

대통령부터 국회의원까지: 2024 공직자 연봉의 명암과 과제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고 단순한 고위공직자가 아니다. 임무가 중하고 영예가 높으니까 (세비도) 높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의원 세비에 대해 언급한 말씀입니다. 이 발언은 2024년 대한민국 고위 공직자들의 급여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2024년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의 급여 현황과 그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2024년 고위 공직자 급여 현황대통령 연봉2024년 윤석열 대통령의 연봉은 2억 5,493만 3천원으로 책정되었습니다. 이는 2023년 대비 약 4.2% 인상된 금액으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간 동결되었던 대통령 연봉이 처음으로 상승한 것입니다. 대통령의 연봉은 국가 원수로서의 중요한 직무를 고려..

정치의 기억 2024.12.09

대한민국 헌정사상 대통령 탄핵: 민주주의의 시험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대통령 탄핵은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0년대 이후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 사례는 국가 최고 지도자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았습니다.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정치적 갈등의 극단2004년 3월 12일, 국회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이 주도한 이 탄핵소추는 찬성 193표, 반대 2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되었습니다.탄핵 사유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이 주요하게 거론되었습니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여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것이 공직선거법상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를..

정치의 기억 2024.12.08

'서울의 봄':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의 거울

지난해 11월 개봉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을 최근에야 넷플릭스에서 관람했다. 개봉 당시 뜨거웠던 열기가 시간이 지나며 다소 식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여전히 강렬했다. 특히 최근 발생한 계엄령 사태와 맞물려 이 영화가 지닌 의미가 더욱 깊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발생한 군사반란을 다룬다. 영화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감독의 상상력을 더해 그날의 9시간을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황정민, 정우성 등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은 관객들을 1979년의 서울로 순식간에 끌어들인다. 특히 전두환을 모델로 한 전두광 역의 황정민은 광기 어린 연기로 독재자의 모습을 섬뜩하게 그려냈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이미..

정치의 기억 2024.12.08

한국 근현대사의 비상계엄: 12번의 선포와 그 의미

한국 근현대사에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총 12번 있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현재까지 이어져 온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을 반영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상계엄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도전들을 엿볼 수 있습니다.비상계엄의 시작과 전개비상계엄의 첫 선포는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였습니다. 이는 신생 대한민국이 직면한 첫 번째 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이후 한국전쟁 기간 동안에도 비상계엄이 실시되었는데, 이는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취해진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상계엄은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4·19 혁명 당시 이승만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 그리고 박정희 정부..

정치의 기억 2024.12.07

최태민: 종교와 정치의 경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

"최태민은 1975년 3월쯤 박근혜와 처음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채 두 달이 안 된 1975년 5월 초부터 반공구국기도회나 구국기도대회를 열고, 구국선교단을 만들고 목사 100여 명에게 군사훈련을 시키고, 급기야 구국십자군을 창건해버렸다."— 한겨레신문 기사 중에서.1. 최태민의 초기 생애와 종교적 이력최태민(1918년~1994년)은 황해도 봉산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시절 경찰로 근무하며 사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해방 이후, 불교 승려로 활동하던 그는 이후 천주교로 개종하며 "최신부"로 불렸고, 나중에는 개신교 목사로까지 활동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종교를 전전한 그는 결국 자신만의 종교인 '영세교'를 창시하며 교주로 활동했습니다.영세교는 불교, 천주교, 개신교의 요소를 혼합한 독특한 신흥..

정치의 기억 2024.12.06

[정치의 기억] 이석기 전 의원, 내란 선동 혐의로 징역 9년 확정

2015년 1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내란 선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이로써 2013년 9월 구속 기소된 이후 약 1년 4개월 만에 최종 판결이 내려졌습니다.1심: 내란 음모 및 선동 혐의 유죄 판결이 전 의원은 2013년 5월, 지하 조직인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의 총책으로서 북한의 대남 혁명론에 동조하며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행위를 모의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되었습니다. 1심 재판부는 RO의 실체를 인정하고, 이 전 의원의 내란 음모 및 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를 인정하여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습니다.  ..

정치의 기억 2024.12.06

[정치의 기억] 이석기 전 의원, 가석방 조건으로 전자발찌 착용 논란

2021년 12월 24일, 내란 선동 혐의로 징역 9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가석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석방 조건으로 부과된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착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전 의원은 당초 전자발찌 착용을 완강히 거부했으나, 법무부의 방침에 따라 결국 이를 수용하고 출소하였습니다. 가석방과 전자발찌 착용의 법적 근거가석방은 형기의 일부를 남긴 수형자가 모범적인 수형 생활을 통해 사회 복귀의 기회를 얻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가석방은 무조건적인 석방이 아니며, 일정한 조건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특히, 특정 범죄자에 대해서는 재범 방지와 사회 안전을 위해 전자발찌 착용이 요구될 수 있습니다.전자발찌는 주로 성범죄자, 살인범, 유괴범 등 재범 위험이 높은 범죄..

정치의 기억 2024.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