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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의 르네상스: 이재명 대표와 사법연수원 18기가 남긴 유산

미지의 방정식 2024. 12. 13. 21:22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보다는 인간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사람이 되어야지, 명사나 권력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1987년 사법연수원에 입소한 이재명 당시 연수생이 자신의 일기장에 남긴 다짐입니다. 이 한 문장에는 그의 인생 철학과 앞으로의 행보를 예견하는 듯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고시 합격과 그의 동기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재명의 사법고시 합격: 불굴의 의지로 일군 성과

이재명 대표는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의 합격은 단순한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 시대의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3세에 공장에 취직했던 소년이,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한 후 마침내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입니다.

 

당시 지역 신문은 이재명의 합격 소식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고 올해 제28회 사법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이재명 씨(23세·성남시 상대원동)". 이 기사는 그의 성취가 얼마나 극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사법연수원 18기: 시대의 변화를 이끈 인재들의 집합

이재명 대표가 속한 사법연수원 18기는 여러모로 특별했습니다. 이들은 1987년, 한국 사회가 민주화의 열기로 들끓던 시기에 연수원에 입소했습니다. 당시 연수생들 중 상당수가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고, 일부는 공무원 신분으로 몰래 시위에 나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18기 내부에는 '기모임'이라는 비공개 동아리가 있었습니다. 이재명을 비롯해 문병호, 최원식, 정성호 등 후일 정치인이 된 이들과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이 모임에 속했습니다. 이들은 노동법학회를 만들고 무료법률상담 활동을 하는 등 사회 참여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쟁쟁한 동기들: 법조계와 정계를 아우르는 인재들

이재명 대표의 18기 동기들 중에는 현재 한국 사회의 각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김재형, 민유숙 대법관, 문형배 헌법재판관, 문무일 전 검찰총장 등이 있습니다.

특히 김재형, 민유숙 대법관은 서울대 법대 83학번으로, 대학 4학년 재학 중 소년급제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수재들입니다. 김재형 대법관은 민법 전문가로 통합도산법 제정을 주도했고, '국정농단' 최순실 씨 사건의 상고심 주심을 맡기도 했습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은 이재명, 문병호, 최원식, 정성호 등과 함께 '기모임'에 속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검사 시절 '지존파 사건'을 수사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이후 '특수통'으로 승승장구했습니다.

 

시대정신을 품은 법조인들: 18기의 특별함

18기 출신들의 특징은 단순히 법률 전문가에 그치지 않고 사회 변화를 이끄는 데 앞장섰다는 점입니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인권변호사나 시민운동가로 활동했습니다. 문병호, 최원식 전 의원은 인천 부평에서, 정성호 의원은 경기 의정부에서, 진봉헌 변호사는 전북 전주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이들은 1988년 노태우 정부가 정기승 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려 하자 반대 성명서 작성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일로 연수원에서 퇴출될 뻔했다는 일화는 18기의 기개와 시대정신을 잘 보여줍니다.

 

시대의 변화를 이끈 18기의 유산

이재명 대와 그의 동기들이 속한 사법연수원 18기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했고, 지금도 그 영향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검정고시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재명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와 그의 동기들의 행보는 앞으로도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할 것입니다.